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거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3월, 국어 시간에 담당
선생님이 첫인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내주었다.
한 달에 한 번 독서감상문 쓰기. 한국 근현대 단편 소설
1권과 해외 고전 문학 1권을 매달 정해주셨고, 그중 한
작품을 내 맘대로 골라 읽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였다.
어쩔 수 없이 과제를 하려고 읽은 책이 정말 재밌어서
깜짝 놀랐고, 3월 이후로는 선생님이 지정해 주는
책 2권을 모조리 읽었고, 한 달에 두 작품은 성에 차지
않아 일주일에 최소 두 작품씩 찾아 읽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기간을 정해 그 기간 안에 다 읽고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책을 빌려주는 비공식 클럽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품들이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근현대
문학이라고 하면 현진건, 이상, 윤흥길, 이청준... 등
문인들의 작품이다. 해외 고전 소설도 톨스토이, 디킨슨,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어른인 지금에야
그 작품들 속 내용이 제대로 이해될까 싶은데, 그 당시
나는 왜 소설에 빠졌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글자들이 표현하는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림처럼,
또 다른 세상처럼 떠올리며 읽어서 그랬던 것일까?
현실은 잊고, 책 속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험은 놀랍다. 공부하고, 숙제하고, 심부름하고...
현실에서 하기 싫은 것들은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세계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오로지 내가 만드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상상하며 책 읽기는 쉬운 듯 어렵다. 글자를 읽으며
작가가 표현한 대로 떠올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가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으면, 글 그대로 상상의
세계가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연습없이 선천적으로 잘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어떤 세계, 어떤 장면을 상상
하고 떠올리는 것은 보통의 상상력과는 다르다. 보통의
상상력을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말과 혼용하고 있다.
책 읽을 때 상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떤 현상이나 일,
사물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인데, 1차적으로는 글이
표현한 그대로 떠올리는 것이다. 글자를 하나씩 따라가
며 작가가 쓴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다. 독자의 창의성은 그다음 발현된다.
작가가 쓰지 않은 것들을 빈 공간에 채워 넣는
2차적 상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2차적 상상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작가가 그리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기만 해도 책 읽는데 문제는 없다. 이 상상하기,
이미지화를 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은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하지 않은 걸 상상으로만
떠올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의 경우는 그림,
사진을 보는 데서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의 시각적
자극이 글자가 주는 자극보다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이
다. 우리가 글보다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나중에
배우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인 듯하다.
그래서 ‘얼룩말’이라고 써진 글을 보면
독자는 자기가 직접 봤거나, 사진, 그림, 영상으로 봤던
얼룩말을 떠올릴 수 있는 거다. 상상하며 책을 잘 읽으려
면 그만큼 무엇이든 관찰하고 보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by 권은경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거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3월, 국어 시간에 담당
선생님이 첫인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내주었다.
한 달에 한 번 독서감상문 쓰기. 한국 근현대 단편 소설
1권과 해외 고전 문학 1권을 매달 정해주셨고, 그중 한
작품을 내 맘대로 골라 읽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였다.
어쩔 수 없이 과제를 하려고 읽은 책이 정말 재밌어서
깜짝 놀랐고, 3월 이후로는 선생님이 지정해 주는
책 2권을 모조리 읽었고, 한 달에 두 작품은 성에 차지
않아 일주일에 최소 두 작품씩 찾아 읽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기간을 정해 그 기간 안에 다 읽고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책을 빌려주는 비공식 클럽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품들이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근현대
문학이라고 하면 현진건, 이상, 윤흥길, 이청준... 등
문인들의 작품이다. 해외 고전 소설도 톨스토이, 디킨슨,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어른인 지금에야
그 작품들 속 내용이 제대로 이해될까 싶은데, 그 당시
나는 왜 소설에 빠졌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글자들이 표현하는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림처럼,
또 다른 세상처럼 떠올리며 읽어서 그랬던 것일까?
현실은 잊고, 책 속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험은 놀랍다. 공부하고, 숙제하고, 심부름하고...
현실에서 하기 싫은 것들은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세계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오로지 내가 만드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상상하며 책 읽기는 쉬운 듯 어렵다. 글자를 읽으며
작가가 표현한 대로 떠올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가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으면, 글 그대로 상상의
세계가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연습없이 선천적으로 잘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어떤 세계, 어떤 장면을 상상
하고 떠올리는 것은 보통의 상상력과는 다르다. 보통의
상상력을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말과 혼용하고 있다.
책 읽을 때 상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떤 현상이나 일,
사물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인데, 1차적으로는 글이
표현한 그대로 떠올리는 것이다. 글자를 하나씩 따라가
며 작가가 쓴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다. 독자의 창의성은 그다음 발현된다.
작가가 쓰지 않은 것들을 빈 공간에 채워 넣는
2차적 상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2차적 상상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작가가 그리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기만 해도 책 읽는데 문제는 없다. 이 상상하기,
이미지화를 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은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하지 않은 걸 상상으로만
떠올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의 경우는 그림,
사진을 보는 데서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의 시각적
자극이 글자가 주는 자극보다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이
다. 우리가 글보다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나중에
배우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인 듯하다.
그래서 ‘얼룩말’이라고 써진 글을 보면
독자는 자기가 직접 봤거나, 사진, 그림, 영상으로 봤던
얼룩말을 떠올릴 수 있는 거다. 상상하며 책을 잘 읽으려
면 그만큼 무엇이든 관찰하고 보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by 권은경